신성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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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문채환 일식집 신성 사장 34년째 한자리 지킨 생선회 요리 대가-한국경제매거진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06.28 17:42
조회수
975
생선회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다. 특히 몸에 좋아 요즘같은 웰빙 시대에 잘 어울리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 많이 먹는다고 비만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여성들의 피부건강에도 그만이다.

동네를 가리지 않고 일식집이나 횟집이 많이 눈에 띄는 것도 이를 반영한다. 회를 즐기는 사宕� 입장에서는 분명 반길 일이지만 반드시 그런것만도 아니다. 맛이나 서비스가 그만그만 하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가운데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자리잡고 있는 일식집 신성(사장 문채환)은 예외다. 최고의 맛과 서비스를 바탕으로 생선회 마니아들을 사로잡고 있기때문이다. 강남 등 먼 곳에서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이 수두룩하다.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2대에 걸쳐 정기적으로 들르는 손님들로 적지 않다.

이름만 대면 금방 알 만한 거물 급 고객도 이루 다 헤아리기 힘들다.고건 전 서울시장과 김덕룡 한나라당 의원이 단골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 등 다수의 국회의원들 역시 자주 찾고 있고,은행장 등 금융권 고위인사들도 신성의 생선회를 즐긴다. 입지 특성상 고위 공무원들도 줄을 잇는다. 진의종 전 국무총리는 단골로 드나들다가 문채환 사장(54)이 결혼할 때 주례까지 서주었다.

일식집 신성을 장안의 명소로 만든 주역은 단연 문사장이다. 생선회 전문요리사인 그는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신성을 국내 최고의 일식집 가운데 하나로 키워놓았다. 30년 넘게 생선회 칼만 휘둘러온 '칼잡이'로서 누구에게나 단 한번 찾아오더라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생선회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다.

신성의 최대 강점은 생선회의 맛에 있다. 꼬들꼬들하고 탄력있는 생선살이 일품이다. 특히 문사장은 회를 손가락만하게 두툼하게 뜬다. 십는 맛이 색다르고 입안에서 생선의 고유맛이 제대로 살아난다. 한점만으로도 신선한 맛이 우러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얄팍하게 썰어보고 두툼하게도 떠봤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한쪽으로 쏠리더군요. 두툼한 회를 맛본 손님들은 이제 얄팍한 회는 더 이상 먹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을 쳤어요. 자연스럽게 신성의 전통이 된겁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좋은 회의 기본은 신선도에 있다는 것이 문사장의 소신이다. 나이가 50대 중반에 들어섰고,직원이 15명이나 되지만 매일 아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대문시장에 나가 직접 횟감을 고른다.

"남대문 시장에 가면 일식집을 대상으로 고급어종만을 파는 수산시장이 새벽 5시를 전후해 반짝 열립니다.
이때 몸집이 퉁퉁하면서도 윤기가 반짝거리는 생선을 고르지요. 사람도 그렇듯이 생선도 건강해 보이는 것이 최고입니다.횟감은 물론 자연산을 고집하고요."

문사장은 횟감을 처리하는 노하우도 탁월하다. 입에 쩍 달라붙는 생선회를 만든다는 평가를 받는데도 그만의 '기술'이 숨어 있다.

"생선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선 속의 피를 잘 빼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살아 있는 생선을 절반정도 잡은 다음 30분 가량 얼음물에 넣어둡니다. 갑작스러운 환경변화에 생선들이 심하게 퍼덕퍼덕하다 보면 피가 완전히 빠지게 되죠.그런 후에 짧은 시간 내에 생선회를 더서 깨끗한 수건(거즈)으로 싼 다음 냉장고에 2시간 정도 보관 합니다.
수분이 많으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없애기 위한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회가 꼬들꼬들해져 맛이 살아납니다."

신성의 명성뒤에는 문사장 나름의 독특한 경영방식도 숨어있다. 다름이 아니라 손님들이 실컷 회를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점이다. 무슨 일식집에서 회를 마음대로 먹게 하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신성에 가면 회만은 마음껏 먹을 수 있다.

"회 등을 추가로 주는 데 있어 종업원들에게 재량권을 줍니다. 종업원들 입장에서는 알아서 서비스를 할 수 있어 좋고, 손님들 역시 그래야 편안하지요."

쪼하나 독특한 것은 모듬회가 메인메뉴라는 것이다. 보통횟집이나 일식집에 가면 광어회,도미회,농어회처럼 어종별로 회를 떠서 팔지만 신성에서는 모듬회로 통일되어 있다. 굳이 손님이 특정 회를 달라고 하면 이에 맞춰 제공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모듬회가 기본이다. 여기에는 농어,도미,광어,방어,개불 등 다양한 생선이 오르고 양도 넉넉하다.

신성이 일식집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문사장이 생선회의 대가 소리를 듣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울에서 3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는 일식집은 신성을 포함해 단 2곳에 불과한 것만 봐도 문사장의 뚝심을 읽을 수 있다.

전북 고창 출신의 문사장은 어려서 부모님을 잃었다. 4형제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지만 따뜻한 사랑 한번 받아본 기억이 없다. 먹고사는 것이 워낙 힘든 시절이라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18살이 되던 지난 69년 청운의 꿈을 가슴 깊이 안고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동네 형밖에 없었습니다. 닥치는대로 일을 했습니다. 막노동 마다하지 않았어요.일단은 입에 풀칠하는 것이 급선무였으니까요."

그러다가 종로 어딘가의 일식집에 들어가면서 '칼잡이'의 인생이 시작됐다. 하루 종일 고된 일의 연속이었지만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특히 체질적으로 워낙 붙임성이 좋아 금세 손님들과 친해지기도 했다. 이푸 72년 지금의 신성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지금은 신성의 사장이지만 처음에는 종업원 신분이었다. 주인을 도와 주방에서 회를 뜨고 손님들에게 서빙을 했다. 일 자체가 워낙 고되 힘에 부치는 일이 반복됐지만 단 한번도 미소를 잃지 않고 손님들을 맞았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79년 문사장은 마침내 신성의 주인이 됐다. 전임사장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물러나면서 "나보다 더 잘할 것 같으니 직접 운영해 보라"며 문사장에게 신성을 넘겼던것이다.

34년째 신성을 지키고 있지만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장사가 너무 안돼 전업을 할까 고민한 적도 있다. "처음에는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어려웠지요. 또 주변에 빌딩이 들어서는 등 여건이 나아진 이후에는 몇 차례 콜레라가 돌아 매출이 급락하는 등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일도 있었습니다.또 한때는 재개발 문제로 크게 고생을 한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사장은 힘이 들고, 위기에 부딪힐때마다 특유의 성실성과 뚝심으로 버텼다. 또 단골들의 격려고 큰 힘이 됐다. 그는 "가게를 접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하니까 단골들이 적극적으로 말렸다" 면서 "몇분은 혹시 자금이 모자라서 그러냐며 자신이 자금을 대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고 말했다. 문사장은 또 "그때 비로소 자신의 천직은 일식집 운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 덧붙였다.

문사장의 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것이 없다. 신성을 인수한 이후 줄곧 국내에서 첫째가는 일식집을 만들겠단,생각을 접은 일이 없다. 지금은 어느 정도 꿈을 이루었지만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문사장은 "고창에서 올라와 일식집에 취직한 이후 최고의 일식집 주방장을 목표로 일해왔다" 며  "지금은 돈도 좀 벌고 자리도 완전히 잡았지만 일식집 사장보다 인간문화재급 요리사라는 소리를 들을때 가장 행복하다" 고  말했다.


한국 경제매거진_김상헌기사 ksh1231@kbizweek.com